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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 것도 다른 것이 아니다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 말을 자주 들을 수 있다. 다양성 존중과 관용의 정신을 강조할 때 자주 쓰인다. 하지만 이 말의 의미를 명백히 하자면 그것은, 다른 것은 다른 것이고 틀린 것은 틀린 것이라는 뜻이 된다.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듯이, 틀린 것도 다른 것이 아니다.

내가 만약 당신이 틀렸다고 공격한다면, 나와 다른 당신의 생각이 틀렸다고 공격하는 것일 수도 있다. 또는 나와 다른 당신의 생각을 다른 생각으로 인정할 수는 있지만, 그 생각을 지금 이 상황에 적용하는 것은 틀렸다고 공격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 공격에 대해 우리는 그저 다를 뿐이라고 대응하는 것은, 당신이 불리한 상황에서는 아주 야비하지만 유용한 수법이다.

이 수법을 써먹는다면, 당신은 당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내 주장을 공박할 필요가 없다. 또는 당신의 생각을 인정한다고 누누이 설명한 내 말은 쉽게 무시할 수 있다. 또는 당신이 지금의 상황을 분석하고 당신의 생각을 지금의 상황에 적용하는 것이 옳은지 아닌지 논증할 필요도 없다. 이미 당신의 수법에 의해, 관중들은 나를 다양성을 짓밟고 관용의 정신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무식한 인간이라 여길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당신은, '엄연히 틀린 것'을 '그저 다른 것'으로, 심지어 때로는 '권위주의나 고정관념에 억압되어온 새로운 것'으로 포장할 수 있게 된다. 이건 현실세계에서 아주 자주 활용되는 테크닉이다.

[한겨레21] 622호에는 국기맹세 거부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이용석 교사의 기고문이 실렸다. 이용석은 이렇게 말한다.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람이 사람에게 폭력을 가할 수 있는 권리와 정당성은 과연 누구에게서 부여받은 것인가? 지금 이 획일화된 사회에서 내가 '인간'으로 존중받기 위해 나는 내 삶에서 작은 것이라도 '획일화된 상식'을 거부하고 싶다."

그러나 '편향교육'을 대서특필해 경기도교육청을 압박한 [조선일보]의 기본 논지는 편향교육의 옳고 그름을 떠나 고3 입시생을 담당하고 있는 공교육 현장의 교사가 학생들의 학습권을 방해할 정도로 심하게 편향교육을 해왔는데, 이에 대한 학부모들의 민원을 교육당국이 묵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용석 지지의 학생들 입장만을 편파적으로 중계하는 [한겨레]와는 달리, [조선일보]는 양쪽 입장의 학생들 의견을 형식적으로는 공정하게 보도하고 있다. [조선일보]의 논리는 좌파적 사고방식은 '틀린 것'이 아니라 그 사고방식을 공교육 현장이라는 상황에서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방식으로 전파하는 것이 '틀린 것'이라는 논리다. 교권의 권위를 자의적으로 남용하고 있다는, 이른바 미시권력론이다. 다른 국기맹세 존치론자들은 남북분단 상황도 들먹인다.

[조선일보]의 주장 정도는 어렵지 않게 논박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용석도 한겨레도 자꾸 전교조 음모이론(내막의 발단은 좌편향교육이 아니었다고도 한다)이나 전체주의 거부의 감정적 대응을 들이대며 우회한다. 이런 방식은 지지자의 결집에는 효과적이지만, 객관적 관찰자를 포섭하는데는 거부감을 일으킨다. 나조차 설득이 안 되는데, 이해당사자인 학부모들이나 학생들이 설득될 것 같지 않다.

나 역시 국기맹세에는 반대한다(솔직히 말해 예비군훈련 때는 동참했지만). 이용석이 말하는 다른 토픽에서도 원칙적으로 그의 입장에 동의한다. 문제는 설득방식이다.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논리의 효용성에 매몰돼, 토론의 상대방에게 음모이론을 덧씌우고 무조건적으로 '다른 것을 인정하지 않는' 전체주의자에 악당으로 몰아세우면, 상대방인 우파는 물론이고, 우파적 가치관이 내면화된 부동층 관중도 설득하기 힘들어진다. 그건 스스로 대화를 거부하는 것이고 입지를 좁히는 일이다. 내가 남의 화법을 운운할 처지는 아니지만, 바로 이것이 당장 전교조가 걷고 있는 길이기도 하다.

by 민형 | 2006/08/08 10:09 | 1표 attitude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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