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5월 05일
노-이 연대설의 전모
그런 글이 한두 건이랴마는, 언젠가 정리해 두기로 하고 지금까지 미뤘던 주제가 바로 '노-이 연대설'이다. 그랬는데 원포인트 개헌안 철회로 노-이 연대의 시도가 거의 완전히 무산된 지금 시점에서야 쓰고 있으니, 바빴다고 해야 하나 게으르다고 해야 하나.
'노-이 연대'의 유일한 팩트는 지난해 여름 노무현의 오른팔인 안희정이 당시 이명박 캠프 넘버6였던 박영준과 만난 일이 기자들에게 포착돼 기사화된 일이다. 이들의 연대설은 지난해 여름을 뜨겁게 달구다가 이명박 본인이 노무현의 연대 제의를 직설적으로 거부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잠잠해졌다.
'노-이 연대'의 희극은 이제부터다. 이명박에게 대놓고 차이고도, 노무현의 짝사랑은 멈추지 않았다. 지난 4월 원포인트 개헌안을 철회하기 전까지 노무현의 정권재창출 전략은 '양다리'였다. 열린우리당 내 친노직계에게 대권을 물려주거나, 아니면 계보는 다르지만 정치적 정체성이 동일한 이명박에게 차기대권을 넘겨주고 그 대가로 기득권을 보장받는 것.
노무현이 이명박에게 보장받을 수 있는 기득권이란? 노무현은 원포인트 개헌으로 이명박에게 8년 집권의 기회를 주는 대신, 중대선거구제와 내각제를 요구하려고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전국적으로 15%, 영남에서만 30%의 고정지지도를 확보하고 있는 친노진영이 중대선거구제와 내각제를 확보한다면 정동영·김근태·천정배가 없어도 18대 총선에서 최소 60석 이상으로 2당의 지위를 확보할 수 있다. 만일 이명박이 한나라당에서 분당해 나온다면 이명박과 함께 내각제에서의 연정을 꾸릴 수도 있다. 그러나 중대선거구제와 내각제가 없는 18대 총선에서 친노진영만으로 구성된 열린우리당의 기대포인트는? 잘해야 17대 총선의 민노당쯤 되겠지.
이를 노린 노무현은 계속해서 이명박 흔들기를 지속해 나갔다. 이명박이 박근혜에게 지지율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한 시점은 추석 연휴가 지난 직후부터였다. 25:25의 비슷한 지지율로 박근혜와 경쟁하던 이명박은 35:25로 10%포인트까지 앞서 나갔다. 이에 대한 당시 언론의 주된 분석은 북한의 핵실험으로 인한 불안심리로 여성후보인 박근혜에서 이탈해 이명박으로 옮겨갔다는 논리였다. 이 논리가 설득력을 얻으려면 당시 박근혜의 지지율이 그만큼 빠졌어야 옳다. 그러나 실제로 빠진 것은 고건·정동영을 비롯한(특히 친노진영의 일파인 국참의 지지을 얻고 있던 정동영은 추석 연휴 이후 다시는 5% 지지율을 회복하지 못했다) 범여권주자들의 지지율이었다. 따라서 지금은 추석 연휴의 이른바 '민족대이동'을 타고 여의도 정가와 시사지에서만 떠돌던 '노-이 연대설'이 퍼져나간 것이 주요인이라는 것이 정통한 분석이다. '민족대이동'을 타고 친노진영의 표가 범여권주자에서 이명박으로 대이동한 것이다. 심지어 11월에 접어들면서 박근혜 진영은 '이명박은 노무현의 트로이목마'라는 설을 집중적으로 퍼뜨리면서 이명박 진영을 공격하려 했지만, 이 전략은 도리어 친노진영의 이명박 지지를 공고히 하는 역효과를 내면서 전략 자체가 폐기된 상태다.
이에 11월부터 노무현은 노골적으로 이명박 돕기를 자행해 나간다. 11월은 친노진영의 이명박 지지로 정동영·김근태 등의 범여권주자들의 지지도가 급격히 추락하자, 밴드웨건효과로 고건이 민주진영의 유일한 대안으로 부상하면서 20%의 지지율을 회복하는 시점이었다. 이에 고건은 야심찬 정치세력화 프로그램을 발표하면서 정치활동의 고삐를 당겼다. 이때 노무현은 뭘 했나. 김대중을 만났다. 그리고 김심이 고건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해 주면서, 고건의 지지기반인 호남을 요동치게 했다. 노무현-김대중 회동 이후 고건 지지율은 다시 18% 이하로 추락한다.
11월에는 임기중 사퇴 시사 발언까지 있었다. 나중에 철회했지만, 이 발언으로 이명박에 대한 기대심리가 올라가면서 급기야 이명박의 지지도는 40%를 돌파한다. 이어 12월 노무현이 고건에게 직격탄을 날리고, 고건의 지지도가 10%대 초반으로 떨어지고, 고건이 불출마선언을 하면서 고건의 지지기반 중 하나였던 중도 유권자들이 이명박으로 돈다. 45%. 연말연시 주요언론들의 여론조사 발표로 대세론이 증폭하면서 이명박 지지도는 급기야 50%를 넘었다.
자, 보다시피 이명박의 지지도가 25%에서 50%로 가는 동안 이명박이 기여한 일은 거의 없다. 그 사이 이명박은 경부운하 구상을 한반도대운하 계획으로 확대발표하고, 유럽을 순회하는 등 몇 가지 이벤트를 벌였지만 지지도가 급격하게 상승하는 시점과는 시기적으로 불일치한다. 이명박의 50% 지지도는 노무현이 만들어 준 셈이다.
우스운 것은 이명박 진영도 이 사실을 감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명박이 노무현에게 뭔가를 해 주어야 할까? 이명박은 노무현에게 손 벌린 적이 없다. 노무현의 일방적인 짝사랑에 보답해 줄 필요는 없었다. 기껏 한다는 정도야 노무현에 대한 비판의 수위를 조절하고, 이재오·홍준표가 번갈아가며 노무현에 대한 립서비스를 베풀 정도일 뿐,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 전략을 꿋꿋이 고수해 나간다.
이 같은 판도가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 상황이 바로 원포인트 개헌안 제안이다. 원포인트 개헌안으로 노무현이 노린 효과는 앞서 말했다. 이에 이명박의 브레인인 정두언은 "분열을 노리고 제안한 것이다. 이명박은 개헌안을 받고 박근혜와 나머지는 안 받을 것이라는 기대"라고 분석했다. 이 문장의 행간은 무엇이냐면, '이미 친노진영의 표는 다 넘어왔는데 지금 와서 노무현과 손 잡겠다고 한나라당 표를 버릴 일은 없다'는 말이다.
노무현과 청와대는 아차 싶었지만, 노무현은 좀더 오기를 부렸다. 사실 속셈이 들통났다고 덥썩 제안을 접는 것은, 속셈이 들통났음을 만천하에 인정하는 일이므로 오기를 부린 것은 정략적으로는 잘한 짓이다. 노무현은 누군가 명분을 만들어 줄 때까지 기다렸고, 명분을 만들어 주자 못 이기는 척하면서 원포인트 개헌안(과 '이명박과의 연대 시도')을 접었다.
이명박 카드를 접었으니 양다리에서 한쪽 다리가 잘려나간 노무현에게는 뭐가 남았나. 정권재창출을 위해 남은 카드는 민주진영 내 자신의 직계후보를 당선시키는 것이다. 그동안 노무현은 민주진영 내 유력인사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프로그램을 가동시켜 왔다. 고건·이해찬·한명숙·정동영·김근태·천정배·유시민이 그들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결과는? 2002년 대선 이전부터 노무현과 함께 일했고 노무현의 스타일을 잘 알고 있던 이해찬·유시민은 남았지만 대선후보로 내세우기에는 안티가 많고, 노무현 밑에서 일해 보기는 처음이었던 고건·정동영·김근태·천정배 등 노무현의 권위적이고 독선적인 실상에 혀를 내두르며 非노로 돌았다.
그러니 이제 노무현이 내세울 수 있는 카드는 얼마 남지 않았다.
'노-이 연대'의 유일한 팩트는 지난해 여름 노무현의 오른팔인 안희정이 당시 이명박 캠프 넘버6였던 박영준과 만난 일이 기자들에게 포착돼 기사화된 일이다. 이들의 연대설은 지난해 여름을 뜨겁게 달구다가 이명박 본인이 노무현의 연대 제의를 직설적으로 거부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잠잠해졌다.
'노-이 연대'의 희극은 이제부터다. 이명박에게 대놓고 차이고도, 노무현의 짝사랑은 멈추지 않았다. 지난 4월 원포인트 개헌안을 철회하기 전까지 노무현의 정권재창출 전략은 '양다리'였다. 열린우리당 내 친노직계에게 대권을 물려주거나, 아니면 계보는 다르지만 정치적 정체성이 동일한 이명박에게 차기대권을 넘겨주고 그 대가로 기득권을 보장받는 것.
노무현이 이명박에게 보장받을 수 있는 기득권이란? 노무현은 원포인트 개헌으로 이명박에게 8년 집권의 기회를 주는 대신, 중대선거구제와 내각제를 요구하려고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전국적으로 15%, 영남에서만 30%의 고정지지도를 확보하고 있는 친노진영이 중대선거구제와 내각제를 확보한다면 정동영·김근태·천정배가 없어도 18대 총선에서 최소 60석 이상으로 2당의 지위를 확보할 수 있다. 만일 이명박이 한나라당에서 분당해 나온다면 이명박과 함께 내각제에서의 연정을 꾸릴 수도 있다. 그러나 중대선거구제와 내각제가 없는 18대 총선에서 친노진영만으로 구성된 열린우리당의 기대포인트는? 잘해야 17대 총선의 민노당쯤 되겠지.
이를 노린 노무현은 계속해서 이명박 흔들기를 지속해 나갔다. 이명박이 박근혜에게 지지율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한 시점은 추석 연휴가 지난 직후부터였다. 25:25의 비슷한 지지율로 박근혜와 경쟁하던 이명박은 35:25로 10%포인트까지 앞서 나갔다. 이에 대한 당시 언론의 주된 분석은 북한의 핵실험으로 인한 불안심리로 여성후보인 박근혜에서 이탈해 이명박으로 옮겨갔다는 논리였다. 이 논리가 설득력을 얻으려면 당시 박근혜의 지지율이 그만큼 빠졌어야 옳다. 그러나 실제로 빠진 것은 고건·정동영을 비롯한(특히 친노진영의 일파인 국참의 지지을 얻고 있던 정동영은 추석 연휴 이후 다시는 5% 지지율을 회복하지 못했다) 범여권주자들의 지지율이었다. 따라서 지금은 추석 연휴의 이른바 '민족대이동'을 타고 여의도 정가와 시사지에서만 떠돌던 '노-이 연대설'이 퍼져나간 것이 주요인이라는 것이 정통한 분석이다. '민족대이동'을 타고 친노진영의 표가 범여권주자에서 이명박으로 대이동한 것이다. 심지어 11월에 접어들면서 박근혜 진영은 '이명박은 노무현의 트로이목마'라는 설을 집중적으로 퍼뜨리면서 이명박 진영을 공격하려 했지만, 이 전략은 도리어 친노진영의 이명박 지지를 공고히 하는 역효과를 내면서 전략 자체가 폐기된 상태다.
이에 11월부터 노무현은 노골적으로 이명박 돕기를 자행해 나간다. 11월은 친노진영의 이명박 지지로 정동영·김근태 등의 범여권주자들의 지지도가 급격히 추락하자, 밴드웨건효과로 고건이 민주진영의 유일한 대안으로 부상하면서 20%의 지지율을 회복하는 시점이었다. 이에 고건은 야심찬 정치세력화 프로그램을 발표하면서 정치활동의 고삐를 당겼다. 이때 노무현은 뭘 했나. 김대중을 만났다. 그리고 김심이 고건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해 주면서, 고건의 지지기반인 호남을 요동치게 했다. 노무현-김대중 회동 이후 고건 지지율은 다시 18% 이하로 추락한다.
11월에는 임기중 사퇴 시사 발언까지 있었다. 나중에 철회했지만, 이 발언으로 이명박에 대한 기대심리가 올라가면서 급기야 이명박의 지지도는 40%를 돌파한다. 이어 12월 노무현이 고건에게 직격탄을 날리고, 고건의 지지도가 10%대 초반으로 떨어지고, 고건이 불출마선언을 하면서 고건의 지지기반 중 하나였던 중도 유권자들이 이명박으로 돈다. 45%. 연말연시 주요언론들의 여론조사 발표로 대세론이 증폭하면서 이명박 지지도는 급기야 50%를 넘었다.
자, 보다시피 이명박의 지지도가 25%에서 50%로 가는 동안 이명박이 기여한 일은 거의 없다. 그 사이 이명박은 경부운하 구상을 한반도대운하 계획으로 확대발표하고, 유럽을 순회하는 등 몇 가지 이벤트를 벌였지만 지지도가 급격하게 상승하는 시점과는 시기적으로 불일치한다. 이명박의 50% 지지도는 노무현이 만들어 준 셈이다.
우스운 것은 이명박 진영도 이 사실을 감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명박이 노무현에게 뭔가를 해 주어야 할까? 이명박은 노무현에게 손 벌린 적이 없다. 노무현의 일방적인 짝사랑에 보답해 줄 필요는 없었다. 기껏 한다는 정도야 노무현에 대한 비판의 수위를 조절하고, 이재오·홍준표가 번갈아가며 노무현에 대한 립서비스를 베풀 정도일 뿐,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 전략을 꿋꿋이 고수해 나간다.
이 같은 판도가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 상황이 바로 원포인트 개헌안 제안이다. 원포인트 개헌안으로 노무현이 노린 효과는 앞서 말했다. 이에 이명박의 브레인인 정두언은 "분열을 노리고 제안한 것이다. 이명박은 개헌안을 받고 박근혜와 나머지는 안 받을 것이라는 기대"라고 분석했다. 이 문장의 행간은 무엇이냐면, '이미 친노진영의 표는 다 넘어왔는데 지금 와서 노무현과 손 잡겠다고 한나라당 표를 버릴 일은 없다'는 말이다.
노무현과 청와대는 아차 싶었지만, 노무현은 좀더 오기를 부렸다. 사실 속셈이 들통났다고 덥썩 제안을 접는 것은, 속셈이 들통났음을 만천하에 인정하는 일이므로 오기를 부린 것은 정략적으로는 잘한 짓이다. 노무현은 누군가 명분을 만들어 줄 때까지 기다렸고, 명분을 만들어 주자 못 이기는 척하면서 원포인트 개헌안(과 '이명박과의 연대 시도')을 접었다.
이명박 카드를 접었으니 양다리에서 한쪽 다리가 잘려나간 노무현에게는 뭐가 남았나. 정권재창출을 위해 남은 카드는 민주진영 내 자신의 직계후보를 당선시키는 것이다. 그동안 노무현은 민주진영 내 유력인사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프로그램을 가동시켜 왔다. 고건·이해찬·한명숙·정동영·김근태·천정배·유시민이 그들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결과는? 2002년 대선 이전부터 노무현과 함께 일했고 노무현의 스타일을 잘 알고 있던 이해찬·유시민은 남았지만 대선후보로 내세우기에는 안티가 많고, 노무현 밑에서 일해 보기는 처음이었던 고건·정동영·김근태·천정배 등 노무현의 권위적이고 독선적인 실상에 혀를 내두르며 非노로 돌았다.
그러니 이제 노무현이 내세울 수 있는 카드는 얼마 남지 않았다.
# by | 2007/05/05 12:17 | 세계 system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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