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8월 04일
영어공용화론
서경식은 [인물과사상] 8월호에서 이런 말을 했다.
"얼마나 실현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조선어뿐 아니라 일어, 러시아어, 중국어, 영어도 우리 민족의 공용어로 채택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유럽처럼 여러 개의 언어를 공용어로 가진 나라가 되면 왜 안 됩니까. 우리가 여러 개의 공용어를 가진 민족이 된다면 (일어만 쓰고 한국어를 쓰지 못하는) 재일조선인들도 당당하게 이 사회의 일원으로 오가게 될 것입니다. … 저는 우리 사회가 아시아 중에서 가장 열린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이 말은 막연히 영어공용화론에 대해 부정적 인상을 갖고 있던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
한국 사회에서 영어공용화론으로 파장을 가장 크게 일으킨 장본인은 복거일이다. 내 기억에 복거일의 주장은 '언어는 도구일 뿐이다. 영어를 공용화해 그 도구를 잘 활용하면 우리 민족의 경제적 효율은 크게 증가할 것이다'쯤 된다. 이 주장은 당연히 언어도구주의와 대척점에 있는 언어철학주의자들의 지탄을 받았다. 그들의 주장은 '언어는 도구일 뿐 아니라 하나의 정체성이고 세계관이다. 영어를 공용어로 받아들여 한국어를 말살하면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고유의 세계관이 말살될 것이다' 정도였다. 굳이 찾아보지 않았지만 복거일은 이에 '영어를 공용어로 받아들이자는 게 한국어를 말살하자는 게 아니다. 한국말 모르냐. '공용'하자는 거다'에 해당하는 반론을 제기했을 법하다. 인구 5백만 명이 사용하는 키르기스어도 중국어와 러시아어에 맞서 소수민족언어로서 정체성을 유지하는 마당에, 인구 1억 명에 육박하는 언중이 사용하는 한국어가 영어와 공용된다 해서 사라지거나 위축될 것 같진 않았지만, 내가 복거일의 주장을 받아들지 않은 것은, 그저 복거일과 영어에 대한 개인적인 호오 때문이었다.
고종석은 한걸음 더 나아간다. 고종석은 복거일의 과도한 언어도구주의적 견해를 경계하면서도, "영어가 공용어가 되든 안 되든, 우리 사회의 지배계층은 자기 자식들에게 영어를 열심히 가르칠 것이다. 그리고 영어에 익숙해진 그들의 자식들은 영어에 익숙하지 못해 지식과 정보에서 소외된 일반대중의 자식들 위에 다시 군림할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민주주의는 특정집단에 의한 그런 식의 지식의 독점을 당연시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한국 사회에서 영어는 지배계층 권력재생산을 위한 도구로 오용되고 있으므로, 영어를 민주화해 지배계층의 영어 독점을 해소하자는 주장이다. 이 주장을 처음 들었을 때는 상당히 비현실적으로 들렸지만, 서경식의 주장과 겹치자 비로소 와 닿았다. 영어를 다양한 외국어로 관점을 확대했고, 단일언어주의에 핍박받는 당사자의 절실한 육성을 들었기 때문이리라.
어줍잖은 생각에는, 영어공용화보다는 일어와 중국어를 공용화하는 것이 언어철학적 가치를 덜 훼손하면서 더 많은 언어도구적 효용성을 가져다 줄 것 같다. 계량화는 해 보지 않았고 할 능력도 없지만, 이런 막연한 추측은 한미FTA보다 동북아경제블록이 더 먼저라는 기존 생각의 반영이기도 하다. 민족사회적 현실을 고려해 봐도 그게 더 옳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왜냐하면 외국어공용화는 지금 초등학생 세대한테나 그 수혜가 돌아갈 것이고, 그들의 혜택은 나에겐 불이익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지금의 단일언어체제에서 이 정도의 외국어 실력이면 지배계층으로 군림하지는 못해도, 중인계층으로서의 이익은 유지할 수 있다. 나는 몇 가지 외국어에 대한 약간의 재화를 갖고 있고, 그 재화의 가치는 재화가 희소성을 유지할 때만 활용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희소성은 내 가족에게 아주 중요한 밥줄의 하나다. 이는 마치 지금 50대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한국식 한자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나 같은 한글세대가 반대하는 현실과 겹친다. 따라서 나는 나의 계층적 이해관계, 즉 아주 이기적인 이유 때문에 외국어공용화를 반대한다.
"얼마나 실현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조선어뿐 아니라 일어, 러시아어, 중국어, 영어도 우리 민족의 공용어로 채택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유럽처럼 여러 개의 언어를 공용어로 가진 나라가 되면 왜 안 됩니까. 우리가 여러 개의 공용어를 가진 민족이 된다면 (일어만 쓰고 한국어를 쓰지 못하는) 재일조선인들도 당당하게 이 사회의 일원으로 오가게 될 것입니다. … 저는 우리 사회가 아시아 중에서 가장 열린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이 말은 막연히 영어공용화론에 대해 부정적 인상을 갖고 있던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
한국 사회에서 영어공용화론으로 파장을 가장 크게 일으킨 장본인은 복거일이다. 내 기억에 복거일의 주장은 '언어는 도구일 뿐이다. 영어를 공용화해 그 도구를 잘 활용하면 우리 민족의 경제적 효율은 크게 증가할 것이다'쯤 된다. 이 주장은 당연히 언어도구주의와 대척점에 있는 언어철학주의자들의 지탄을 받았다. 그들의 주장은 '언어는 도구일 뿐 아니라 하나의 정체성이고 세계관이다. 영어를 공용어로 받아들여 한국어를 말살하면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고유의 세계관이 말살될 것이다' 정도였다. 굳이 찾아보지 않았지만 복거일은 이에 '영어를 공용어로 받아들이자는 게 한국어를 말살하자는 게 아니다. 한국말 모르냐. '공용'하자는 거다'에 해당하는 반론을 제기했을 법하다. 인구 5백만 명이 사용하는 키르기스어도 중국어와 러시아어에 맞서 소수민족언어로서 정체성을 유지하는 마당에, 인구 1억 명에 육박하는 언중이 사용하는 한국어가 영어와 공용된다 해서 사라지거나 위축될 것 같진 않았지만, 내가 복거일의 주장을 받아들지 않은 것은, 그저 복거일과 영어에 대한 개인적인 호오 때문이었다.
고종석은 한걸음 더 나아간다. 고종석은 복거일의 과도한 언어도구주의적 견해를 경계하면서도, "영어가 공용어가 되든 안 되든, 우리 사회의 지배계층은 자기 자식들에게 영어를 열심히 가르칠 것이다. 그리고 영어에 익숙해진 그들의 자식들은 영어에 익숙하지 못해 지식과 정보에서 소외된 일반대중의 자식들 위에 다시 군림할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민주주의는 특정집단에 의한 그런 식의 지식의 독점을 당연시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한국 사회에서 영어는 지배계층 권력재생산을 위한 도구로 오용되고 있으므로, 영어를 민주화해 지배계층의 영어 독점을 해소하자는 주장이다. 이 주장을 처음 들었을 때는 상당히 비현실적으로 들렸지만, 서경식의 주장과 겹치자 비로소 와 닿았다. 영어를 다양한 외국어로 관점을 확대했고, 단일언어주의에 핍박받는 당사자의 절실한 육성을 들었기 때문이리라.
어줍잖은 생각에는, 영어공용화보다는 일어와 중국어를 공용화하는 것이 언어철학적 가치를 덜 훼손하면서 더 많은 언어도구적 효용성을 가져다 줄 것 같다. 계량화는 해 보지 않았고 할 능력도 없지만, 이런 막연한 추측은 한미FTA보다 동북아경제블록이 더 먼저라는 기존 생각의 반영이기도 하다. 민족사회적 현실을 고려해 봐도 그게 더 옳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왜냐하면 외국어공용화는 지금 초등학생 세대한테나 그 수혜가 돌아갈 것이고, 그들의 혜택은 나에겐 불이익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지금의 단일언어체제에서 이 정도의 외국어 실력이면 지배계층으로 군림하지는 못해도, 중인계층으로서의 이익은 유지할 수 있다. 나는 몇 가지 외국어에 대한 약간의 재화를 갖고 있고, 그 재화의 가치는 재화가 희소성을 유지할 때만 활용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희소성은 내 가족에게 아주 중요한 밥줄의 하나다. 이는 마치 지금 50대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한국식 한자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나 같은 한글세대가 반대하는 현실과 겹친다. 따라서 나는 나의 계층적 이해관계, 즉 아주 이기적인 이유 때문에 외국어공용화를 반대한다.
# by | 2007/08/04 12:46 | 1표 attitude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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