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3월 31일
사회당 탈당, 진보신당 입당
조금 지났지만, 3월 17일부로 한국사회당을 탈당하고 진보신당연대회의에 입당했다. 오른쪽에 단 배너는 지난 주에 갈았고.
사회당의 전신인 청년진보당은 1998년에 출범했다. 민주노동당의 전신인 국민승리21을 두고 별도의 독자 정당을 만든 명분은, 국민승리21이 1997년 대선 당시 '일어나라 코리아'라는 자주파 편향적인 구호를 사용하고 노동자정치세력화 대신 개혁적 국민정당운동을 노선으로 삼으려 했기 때문이었다. 민교협 등 국민승리21을 구성하고 있던 평등파 제세력의 항의로 이러한 구호와 노선은 차후 수정되었지만, 평등파 내 일개 정파였던 진보청년회는 끝내 국민승리21에서 이탈했다. 여기까지는 비판할 일이 아니다. 국민승리21을 이탈해 김대중 지지로 선회한 전국연합에 비하면 명분이 있는 행동이었으니까.
이들은 다음해 청년진보당을 창당하여 2000년 16대 총선 때는 서울 전지역에 후보를 출마시켜 일부 지역에서는 자민련이나 민국당 후보보다 많은 득표를 하는 등 뒤늦게 창당한 민노당을 앞서 나가기도 했다. 그러나 호시절은 그때가 끝이다. 2000년을 기점으로 진보정당운동의 주도권은 급격하게 민노당으로 넘어갔고,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사회당은 통일좌파와 독립좌파 노선으로 분열된다. 두 노선의 차이를 다소 과격하게 설명하면, 통일좌파는 민노당 내 좌파를 포함한 좌파통합정당을 만들자는 노선이었고, 독립좌파는 사회당을 민노당보다 더 급진적인 정당으로 만들자는 노선이었다. 두 노선은 폭력사태를 동반한 극단적인 감정 대립으로 치달았고, 결국 당대회를 통해 통일좌파가 당권을 장악하고 독립좌파가 탈당하면서 당의 영향력이 급속도로 약화된다. 2007년 대선에서 금민 후보의 득표는 1만 8,223표에 그쳤고, 2008년 현재 사회당의 당원은 1,500명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전통적으로 사회당을 지지하는 이유는 대체로 두 가지다. 反조선노동당을 표방한 유일한 진보정당을 지지하거나, 민노당보다 진보적일 것이라는 이미지 때문이거나. 그러나 두 번째 이유는 독립좌파의 탈당 이후 더 이상 들어맞지 않는다. 내가 사회당에 입당한 이유는 첫 번째 이유 때문이었고, 그때나 지금이나 스스로 에코아나키스트라고 생각하는 관점에서 적-녹-흑동맹을 내세우며 명목상으로 아나키즘의 정치적 실체를 인정하는 유일한 정당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아나키스트들은 이미 탈당했거나 말거나. 나는 사회당이 민노당이 분열했을 때 주사파와 고별하고 민노당을 이탈하는 좌파들을 받아줄 수 있는 든든한 집이 되기를 원했다.
사회당을 탈당한 이유는 결론적으로 사회당은 좌파통합정당이 되기엔 부실한 집이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부실한 집이라는 사실이 민노당 분당 정국을 통해 여실히 검증됐으며 앞으로도 그 부실함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당의 노선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탈당한 3월 17일은 사회당 당대표를 뽑는 10차 당대회 다음 날이다. 이번 당대표 경선에는 모두 3종류의 선본이 출마했다. 진보신당과 조기 통합을 주장하는 신당파, 사회적 공화주의 계승을 주장하는 공화파, 그리고 선혁신 후통합을 주장하는 쇄신파가 그들이다. 쉽게 말해 신당파는 2002년 이전의 당권파, 공화파는 현재 당권파, 쇄신파는 한마디로 아웃사이더들이다.
나는 신당파를 지지했다. 사회적 공화주의? 사민주의 정책들에 대한 산발적인 칼럼들을 모아놓았을 뿐인, 2007년 대선용 급조 노선이다. 계승할 실체가 있어야 계승을 주장할 수 있다. 오히려 현 당권파는 민노당 분당 정국에서 진보신당 논의의 주도권을 가져오지 못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조승수한테 '민노당이 유일한 진보정당' 발언을 사과할 것을 요구하면서 민노당 선도탈당파인 새로운진보정당운동과 위화감을 조성한 것도 이들이었다. 사회당이 건재했다면 민노당 탈당파들이 총선용 임시정당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 그 책임도 바로 공화파들에게 물어야 한다.
쇄신파를 지지하지 않은 이유는 별로 없다. 선혁신 후통합 방침이 좀 의아했을 뿐. 좌파통합정당 노선을 최우선에 두느라 당내 조직원들을 몰아냈으면서 5년 동안 아무런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한 실력인데, 이제 좌파통합정당 노선을 두 번째로 미뤄 두겠다고? '선혁신'은 몰라도 '후통합'이라는 구호에 과연 실천적 의지가 있을까. 그 의문은 당대표 경선 과정상에서 벌어진 우스운 일련의 사건들로 해명됐다.
당초 공화파는 진보신당과 연대, 정당등록 취소 우려 등을 이유로 총선 불참을 선언하고 이 방침을 중앙위를 통해 통과시켰다. 이에 신당파가 반발하자 공화파는 '말 바꾸기 세력'이라는 네거티브로 신당파를 비난했다. '신당파는 대선 평가 일정을 연장할 것을 주장했는데 이는 총선 준비를 지연시킨 것이다, 뒤늦게 총선에 참여해야 한다고 나선 것은 정치적 공세일 뿐'이라고 공격한 것이다. 웃기는 말이다. 무슨 정당이 대선 평가와 총선 준비 정도도 동시에 진행하지 못하나. 게다가 그때까지 사회당에서 총선을 준비한 지역위는 모두 신당파 구성원들뿐이었다. 반대로 총선 준비할 생각도 없었던 사람들이 대선 평가 연장 핑계를 대며 총선에 나갈 수 없다고 억지를 부린 것이다. 신당파가 당대회를 통해 진보신당 우회출마 결의안을 발의하자, 공화파는 사회당 독자출마 결의안으로 맞선다. 언제는 불참해야 한다더니! 당대회의 표결로 독자출마안이 통과됐고, 이러한 '먼저 말 바꾼 놈이 성내기'의 과정은 모두 며칠 사이로 일어난 일이다.
투표를 사흘쯤 앞두고는 공화파와 쇄신파가 당대회의 공동지도부 구성에 합의했다는 성명을 발표한다. 쇄신파는 '무기력한 공화파의 가족주의를 청산하고 자신들이 당 분위기를 쇄신하겠다'더니, 결국 소수에 불과한(선본 인원 3명) 쇄신파가 선출돼도 공화파가 당권을 장악하는 상황이 지속되는 것이다. '쇄신파 쇄신 의지 없음' 판명. 나아가 이 성명을 발표하면서 공화파는 신당파를 향해 너희도 투표에 지더라도 탈당하지 말고 공동지도부 합의에 동참하라고 압력을 넣는다. 신당파는 '우리한테 사전에 합의하자고 한 적 없잖아? 왜 우리를 탈레반으로 모니?'라고 항의했지만 공화파는 묵묵 부답. 결국 3월 16일 당대회에서 공화파가 수십 표 차이로 이긴다.
당권을 잡은 공화파는 쇄신파의 주장을 받아들여 사회적 공화주의 계승, 사회당 先혁신, 진보신당과 당대당 통합을 노선으로 하겠다고 선언했다. 초록당과 합당해 초록사회당을 건설하겠다는 쇄신파의 공약도 받아들인 것 같지만 정작 초록당은 진보신당에 더 관심이 많다. 이들이 진보신당과 조기 통합을 반대하는 이유는 총선을 앞두고 급조한 진보신당이 절차적 민주주의를 무시했기 때문이란다. 그런 사회당 지도부는 3월 26일 임시당대회(실제로는 공화파 성원들 내부에서만 홍보된 인터넷 투표)를 열어 사전 논의는 거의 없이 373명이 투표에 참가해 비례대표 2명을 선출했다. 당원 한 사람이 그 같은 날치기에 항의를 촉구하는 전체메일을 당원들에게 돌리자 당 지도부는 개인정보 무단 이용을 들어 그 당원을 징계했다. 절차적 민주주의? 흥이다.
사회당이 진보신당을 비판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정파연합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단일 정파로 당내 독재하시겠다고? 그래서 1천 당원, 대선 1만표의 정당으로 진보신당과 당대당 통합을 하겠다고? 그래서 무슨 지분을 얻어내시려고? 결국 사회당 지도부가 단일대오를 고수하면서 종국에는 진보신당에 들어가 한 자리 하겠다는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내가 후일 어쩌면 있을지도 모를 진보신당-사회당 통합국면에서 사회당 지도부의 지분 정치를 위한 수치로 활용되고 싶지 않다. 그게 내가 탈당한 이유다.
진보신당에 입당한 이유는 나중에 설명하도록 하자. 글 길다.
사회당의 전신인 청년진보당은 1998년에 출범했다. 민주노동당의 전신인 국민승리21을 두고 별도의 독자 정당을 만든 명분은, 국민승리21이 1997년 대선 당시 '일어나라 코리아'라는 자주파 편향적인 구호를 사용하고 노동자정치세력화 대신 개혁적 국민정당운동을 노선으로 삼으려 했기 때문이었다. 민교협 등 국민승리21을 구성하고 있던 평등파 제세력의 항의로 이러한 구호와 노선은 차후 수정되었지만, 평등파 내 일개 정파였던 진보청년회는 끝내 국민승리21에서 이탈했다. 여기까지는 비판할 일이 아니다. 국민승리21을 이탈해 김대중 지지로 선회한 전국연합에 비하면 명분이 있는 행동이었으니까.
이들은 다음해 청년진보당을 창당하여 2000년 16대 총선 때는 서울 전지역에 후보를 출마시켜 일부 지역에서는 자민련이나 민국당 후보보다 많은 득표를 하는 등 뒤늦게 창당한 민노당을 앞서 나가기도 했다. 그러나 호시절은 그때가 끝이다. 2000년을 기점으로 진보정당운동의 주도권은 급격하게 민노당으로 넘어갔고,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사회당은 통일좌파와 독립좌파 노선으로 분열된다. 두 노선의 차이를 다소 과격하게 설명하면, 통일좌파는 민노당 내 좌파를 포함한 좌파통합정당을 만들자는 노선이었고, 독립좌파는 사회당을 민노당보다 더 급진적인 정당으로 만들자는 노선이었다. 두 노선은 폭력사태를 동반한 극단적인 감정 대립으로 치달았고, 결국 당대회를 통해 통일좌파가 당권을 장악하고 독립좌파가 탈당하면서 당의 영향력이 급속도로 약화된다. 2007년 대선에서 금민 후보의 득표는 1만 8,223표에 그쳤고, 2008년 현재 사회당의 당원은 1,500명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전통적으로 사회당을 지지하는 이유는 대체로 두 가지다. 反조선노동당을 표방한 유일한 진보정당을 지지하거나, 민노당보다 진보적일 것이라는 이미지 때문이거나. 그러나 두 번째 이유는 독립좌파의 탈당 이후 더 이상 들어맞지 않는다. 내가 사회당에 입당한 이유는 첫 번째 이유 때문이었고, 그때나 지금이나 스스로 에코아나키스트라고 생각하는 관점에서 적-녹-흑동맹을 내세우며 명목상으로 아나키즘의 정치적 실체를 인정하는 유일한 정당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아나키스트들은 이미 탈당했거나 말거나. 나는 사회당이 민노당이 분열했을 때 주사파와 고별하고 민노당을 이탈하는 좌파들을 받아줄 수 있는 든든한 집이 되기를 원했다.
사회당을 탈당한 이유는 결론적으로 사회당은 좌파통합정당이 되기엔 부실한 집이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부실한 집이라는 사실이 민노당 분당 정국을 통해 여실히 검증됐으며 앞으로도 그 부실함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당의 노선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탈당한 3월 17일은 사회당 당대표를 뽑는 10차 당대회 다음 날이다. 이번 당대표 경선에는 모두 3종류의 선본이 출마했다. 진보신당과 조기 통합을 주장하는 신당파, 사회적 공화주의 계승을 주장하는 공화파, 그리고 선혁신 후통합을 주장하는 쇄신파가 그들이다. 쉽게 말해 신당파는 2002년 이전의 당권파, 공화파는 현재 당권파, 쇄신파는 한마디로 아웃사이더들이다.
나는 신당파를 지지했다. 사회적 공화주의? 사민주의 정책들에 대한 산발적인 칼럼들을 모아놓았을 뿐인, 2007년 대선용 급조 노선이다. 계승할 실체가 있어야 계승을 주장할 수 있다. 오히려 현 당권파는 민노당 분당 정국에서 진보신당 논의의 주도권을 가져오지 못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조승수한테 '민노당이 유일한 진보정당' 발언을 사과할 것을 요구하면서 민노당 선도탈당파인 새로운진보정당운동과 위화감을 조성한 것도 이들이었다. 사회당이 건재했다면 민노당 탈당파들이 총선용 임시정당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 그 책임도 바로 공화파들에게 물어야 한다.
쇄신파를 지지하지 않은 이유는 별로 없다. 선혁신 후통합 방침이 좀 의아했을 뿐. 좌파통합정당 노선을 최우선에 두느라 당내 조직원들을 몰아냈으면서 5년 동안 아무런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한 실력인데, 이제 좌파통합정당 노선을 두 번째로 미뤄 두겠다고? '선혁신'은 몰라도 '후통합'이라는 구호에 과연 실천적 의지가 있을까. 그 의문은 당대표 경선 과정상에서 벌어진 우스운 일련의 사건들로 해명됐다.
당초 공화파는 진보신당과 연대, 정당등록 취소 우려 등을 이유로 총선 불참을 선언하고 이 방침을 중앙위를 통해 통과시켰다. 이에 신당파가 반발하자 공화파는 '말 바꾸기 세력'이라는 네거티브로 신당파를 비난했다. '신당파는 대선 평가 일정을 연장할 것을 주장했는데 이는 총선 준비를 지연시킨 것이다, 뒤늦게 총선에 참여해야 한다고 나선 것은 정치적 공세일 뿐'이라고 공격한 것이다. 웃기는 말이다. 무슨 정당이 대선 평가와 총선 준비 정도도 동시에 진행하지 못하나. 게다가 그때까지 사회당에서 총선을 준비한 지역위는 모두 신당파 구성원들뿐이었다. 반대로 총선 준비할 생각도 없었던 사람들이 대선 평가 연장 핑계를 대며 총선에 나갈 수 없다고 억지를 부린 것이다. 신당파가 당대회를 통해 진보신당 우회출마 결의안을 발의하자, 공화파는 사회당 독자출마 결의안으로 맞선다. 언제는 불참해야 한다더니! 당대회의 표결로 독자출마안이 통과됐고, 이러한 '먼저 말 바꾼 놈이 성내기'의 과정은 모두 며칠 사이로 일어난 일이다.
투표를 사흘쯤 앞두고는 공화파와 쇄신파가 당대회의 공동지도부 구성에 합의했다는 성명을 발표한다. 쇄신파는 '무기력한 공화파의 가족주의를 청산하고 자신들이 당 분위기를 쇄신하겠다'더니, 결국 소수에 불과한(선본 인원 3명) 쇄신파가 선출돼도 공화파가 당권을 장악하는 상황이 지속되는 것이다. '쇄신파 쇄신 의지 없음' 판명. 나아가 이 성명을 발표하면서 공화파는 신당파를 향해 너희도 투표에 지더라도 탈당하지 말고 공동지도부 합의에 동참하라고 압력을 넣는다. 신당파는 '우리한테 사전에 합의하자고 한 적 없잖아? 왜 우리를 탈레반으로 모니?'라고 항의했지만 공화파는 묵묵 부답. 결국 3월 16일 당대회에서 공화파가 수십 표 차이로 이긴다.
당권을 잡은 공화파는 쇄신파의 주장을 받아들여 사회적 공화주의 계승, 사회당 先혁신, 진보신당과 당대당 통합을 노선으로 하겠다고 선언했다. 초록당과 합당해 초록사회당을 건설하겠다는 쇄신파의 공약도 받아들인 것 같지만 정작 초록당은 진보신당에 더 관심이 많다. 이들이 진보신당과 조기 통합을 반대하는 이유는 총선을 앞두고 급조한 진보신당이 절차적 민주주의를 무시했기 때문이란다. 그런 사회당 지도부는 3월 26일 임시당대회(실제로는 공화파 성원들 내부에서만 홍보된 인터넷 투표)를 열어 사전 논의는 거의 없이 373명이 투표에 참가해 비례대표 2명을 선출했다. 당원 한 사람이 그 같은 날치기에 항의를 촉구하는 전체메일을 당원들에게 돌리자 당 지도부는 개인정보 무단 이용을 들어 그 당원을 징계했다. 절차적 민주주의? 흥이다.
사회당이 진보신당을 비판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정파연합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단일 정파로 당내 독재하시겠다고? 그래서 1천 당원, 대선 1만표의 정당으로 진보신당과 당대당 통합을 하겠다고? 그래서 무슨 지분을 얻어내시려고? 결국 사회당 지도부가 단일대오를 고수하면서 종국에는 진보신당에 들어가 한 자리 하겠다는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내가 후일 어쩌면 있을지도 모를 진보신당-사회당 통합국면에서 사회당 지도부의 지분 정치를 위한 수치로 활용되고 싶지 않다. 그게 내가 탈당한 이유다.
진보신당에 입당한 이유는 나중에 설명하도록 하자. 글 길다.
# by | 2008/03/31 19:53 | 세계 system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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